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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책

이주하는 인류(2023)

by 방황하는물고기 2024. 4. 8.

이주하는 인류(2023)

이동진이 추천한 2023년 3대 책 중 마지막 책을 끝냈다. 전세계 여기저기를 떠돌며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를 살고있는 저자가 “언제쯤 정착할거냐”라는 말을 듣고 쓴 책이다. 저자는 이주가 정상적인 활동이며 인간 조건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욕망과 속성은 다르다.]
인간은 정착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배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더 과거로 돌아가 메소포타미아 시절부터 도시 사람은 유목민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유목은 천하고 정착은 세련된 것이다. 이주는 익숙한 것에서 강제로 멀어져야 하는 자유의 박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과는 반대로 인류의 속성은 이주로 이루어진다. 이주민을 배척하는 이들또한 이주민 출신이다. 영광스러운 로마 제국 또한 그 속주국이 늘어나며 본토 로마인을 찾는 것은 의미를 잃었다. 자신을 로마인이라고 칭하는 것이 로마인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로마 3세기에 이르러서는 로마가 이주민 황제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조상의 모국이 존재한다는 개념 그 자체다. 사실은 그 반대가 진실에 더 가깝다. 우리의 근원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진 지역들은 기껏해야 고대 조상들이 통과한, 깊은 역사 속의 임시 거주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인류의 역사가 고대부터 지속되었다는 인간의 깊은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다면 아프리카 대륙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단 하나뿐인 진정한 본향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ㅋㅋ)


6세기에 이르러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걸 창피해한다는 문헌이 등장했다고 하지만, 몇백년 전에는 이주민을 사회의 중심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비슷한 사례로 바이킹이 있다. 20세기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최상급으로 분류하는 북유럽바이킹인들은 실제로 민족적 순수함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 생기다]
아래 두 서술 중에 주관적 해설이 배제된 것은 전자이다.

1) 한 로마 황제가 대규모 이주민 공동체가 자신의 영토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했다. 그들은 그를 살해했다.
2) 한 로마 황제가 대규모 이주민 공동체를 극도로 잔인하게 다루는 것을 허용했다. 그들은 그를 살해했다.


그리고 주관적 해석의 결여는 로마가-그리고 우리가- 이주민들을 박해하고 차단하는 것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 맥락을 더 넓게 보지 않으면 (2)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이주민들이 종주인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결과는 변하지 않지만, 둘 다 가해자인 것을 이해하는 건 서로의 상처를 줄일 수도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이주민은 흔히 괴물 혹은 고귀한 야만인으로 이분화되어 타자화된다. 이주민은 아주 나쁘거나 아주 순수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어긋난 모습을 보이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코로나가 우한 바이러스로 불리고, 동양인들이 폭행을 당했듯이 과거에는 매독이 어디서는 ‘프랑스병’이고 프랑스에서는 ‘나폴리병’ 이었으며 러시아인에게는 ‘폴란드병’이었다. 이주민을 악마화 하는 일은 쉽다.

[이주의 동태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주는 다양한 형태를 띈다. 노트북 한 권을 가지고 치앙마이에서 땡모반 한 잔을 마시는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도 있고, 전쟁을 피해 가족을 모두 데리고 돛단배로 강을 건너온 난민이 될 수도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현대 이주의 네 가지 케이스를 설명한다. 흑인 노예, 중국 이민자, 유대인, 그리고 멕시코 이주 노동자. 타의가 섞일때도, 자의가 섞일 때도 있지만 이주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일손을 원했는데 인간이 왔다" 현재 이주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는 문장이다. 이주민을 인간으로 다루지 않으면 우리 머릿속의 욕망은 그들을 배척하려 할 것이다.

[다소 급진적인 생각]
저자는 더 나아가 국경을 넘어 모든 인류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내가 받아들이긴 어려운 개념이다. 나는 아직 규칙과 국경에 따라 이주의 절차가 있고 그들의 신원을 보증했으면 한다. 보수적인 생각이지만 통제할 수 없는 유입으로 인한 혼란이 아직은 두렵다.

[네안데르탈인]
이 책을 보고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패배한 도태 종족으로 여겨진다. 유럽에서 상대방을 네안데르탈인으로 칭하는 것은 욕이다. 하지만 어쩌면 네안데르탈인은 덜 호전적인 평범한 이주 종족이었을 수 있다. 싸우기 싫어하는 순한 종족이 호모 사피엔스에게 살해당하는 모습이 그려져서 마음이 살짝 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