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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씀/일기

"꽃 선물은 돈 낭비일까"를 전망이론으로 답해보자

by 방황하는물고기 2024. 4. 15.

내가 고민한 것 대비 상대방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선물이 가끔 떠오른다. 
10만원은 그 중 하나다. 
 
L이 유학 갈 때 환전한 10만원을 줬었다.
다른 친구는 유학가서 만난 외국인 친구한테 주라고 한국 젓가락, 키링, 마스크팩 등 잡다한 한국 특산물을 챙겨줬다.
 
비용으로 따지자면 비슷했을 것이다. 아니면 10만원이 더 많거나. 
이래저래 짐 챙길 것도 많고, 필요없는 걸 주면 귀찮을테고, 학생이니 급전이 필요할 수도 있고, 하니 돈이 유용하지 않을까 했는데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L은 다른 친구가 준 선물을 훨씬 더 많이 언급했다.
 
효율성과 실용성으로 따지면 돈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왜 L은 반응이 별로였을까?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이득보다 손실을 최소화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이다. 
 
전망 이론에 따르면 아래 두 가지 상자가 있을 때 사람들은 A를 고를 것이다.

A. 100만원을 확률 100%로 얻는 상자
B. 1000만원을 확률 10%로 얻는 상자

 
그러면 아래 두 선택지로 바꿔보자.

A.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확률 100%로 받는 상자 (선물을 지정해주거나, 돈으로 달라고 하거나)
B.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확률 ?%로 받는 상자 

 
어라, 이 경우에는 나도 그렇고, L도 그랬고, B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
왜 선물은 전망 이론에 들어맞지 않을까?
 
선물은 선물이라는 어떤 물건 자체의 물질적 가치가 끝이 아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투자하는 성의와 노력이 합쳐져서 선물이 된다.
그러면 위 선택지도 '성의의 만족도'라는 또 다른 변수를 고려사항에 넣어야 한다.

아무리 내가 받고 싶었던 물건이라도 상대방의 성의가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A의 총 가치는 B보다 낮아질 수도 있다.
전망 이론의 골자는 손실에서 느끼는 불만족이 이익에서 느끼는 만족보다 2배 이상 크다는 것이다. 인간은 손실을 회피하는 선택을 한다.
우리가 바라는 건 상대방이 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손실 회피성에 따라 상대방이 나를 위해서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잃을 수 있는 선물은 기피하게 된다. 어쩌면 물건보다도 성의의 가치에 더 가중치를 두는지도 모른다.
 
선물의 본질은 성의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의 성의가 매우 낮더라도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의 가치가 매우 크다면 상쇄가 될 것이기 때문에 둘이 서로 치고받으면서 우위를 다투는 배틀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런 측면에서, "꽃 선물은 돈 낭비일까?" 라는 태초의 질문에 대한 답은 선물의 어느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다음과 같이 사분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75% 확률로 돈 낭비가 아니다. 변수와 분포는 고려하지 않는다.